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청년과 함께 이 저녁

lunlim 2007. 3. 16. 01:32


 

       
    고요한 색시 같은 잎새는 바람이 몸이 됩니다
    살금살금, 바람이 짚어 내는 저 잎맥도
    시간을 견뎌 내느라 한 잎새에 여러 그늘을 만드는데
    그러나 여러 그늘이 다시 한 잎새 되어
    저녁의 그물 위로 순하게 몸을 주네요
    나무 아래 멈춰 서서 바라 보면 어느새 제 속의 그대는 
    청년이 되어 늙은 마음의 애달픈 물음 속으로
    들어와 황혼의 손으로 악수를 청하는데요
    한 사람이 한 사랑을 스칠 때
    한 사랑이 또, 한 사람을 흔들고 갈 때
    터진 곳 꿰맨 자리가 아무리 순해도 속으로
    상처는 해마다 겉잎과 속잎을 번갈아 내며
    울울한 나무 그늘이 될 만큼
    깊이 아팠는데요
    그러나 그럴 연해서 서로에게 기대면서 견디어 내면서
    둘 사이의 고요로만 수수로울 수 없는 것을,
    한 떨림으로 한 세월 버티어 내고 버티어 낸 
    한 세월이 무장무장 큰 떨림으로 저녁을 부려 놓고 갈 때 
    멀리 집 잃은 개의 짖는 소리조차 
    마음의 집 뒤란에 머위잎을 자라게 하거늘
    나 또한
    애처로운 저 개를 데리고
    한때의 저녁 속으로 
    당신을 남겨두고 그대,
    내 늙음 속으로 슬픈 악수를 청하던
    그때를 남겨두고 사라지려 합니다,
    청년과 함께 이 저녁 슬금슬금 산책이
    오래 아프게 할 이 저녁
    청년과 함께 이 저녁  /  허수경
    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   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

          해뜸은

          그 출현으로 인해  순식간에  주위를 바라 볼 수 없을 만큼 눈부시게 만들고

          해짐은

          그 여명으로 인해  지는 내내 주변를 따뜻하고 푸근하게 만들면서

          기어이 돌아가고야 마는 정리를 엄숙하게 일깨우곤 한다

 

 

 

            

   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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